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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리덥십개발에 대한 강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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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병기 댓글 0건 조회 1,889회 작성일 11-03-31 10:59

본문


-이 강의안은 박사학위논문의 일부이기 때문에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합니다-


- 목 차 -

1. 사도의 사역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1) 사도들의 권위로서의 리더십
2) 성령을 통한 능력의 리더십
3) 역할분담으로서의 리더십
4) 순교자로서의 리더십

2. 선지자의 사역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1) 모세의 사역가운데 나타난 리더십
2) 느헤미야의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
3) 이사야의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
4) 복음 전하는 자의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 개발

3. 목사와 교사의 사역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1) 목사의 직분에 나타난 리더십
2) 교사의 직분에 나타난 리더십

4. 사역자 모델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1) 목자로서의 리더십
2) 종으로서의 리더십
3) 청지기로서의 리더십
4) 중보자로서의 리더십

★ 요약과 평가



-이 강의안의 무단복제나 사용을 허락지 않습니다.-
목회적 측면에서의 선교사 리더십 개발
(엡4:11-12)


선교사의 영적 리더십은 사역의 기본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본 장에서는 선교사의 목회적 측면에서 리더십 개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목회적 측면에서의 리더십 개발에 대한 대표적인 말씀은 에베소서 4장 11-12절 말씀에 잘 나타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사도바울은 이러한 직분을 주신 것은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즉 선교현장에서 성도로 부름 받는 사람들의 영적 향상과 더불어 그들이 선교사를 따라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하게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확장에 있어서 그 조직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더불어 직분의 기능과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목회적 측면의 선교사 리더십 개발에 관한 연구로서 직분의 기능과 역할을 분석함으로써 직분에 나타나는 선교사의 리더십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자 한다.

1. 사도의 사역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예수의 선교 명령(행 1:8)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사람들은 사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성령의 체험을 통해 예수의 증거자들이 되었으며 선교사역자로서 사도들이 되었다. 이들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외부의 온갖 시기와 박해로 수난의 역사를 거쳤지만 이런 수난은 복음의 시작으로서 이방선교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사역가운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어떠한 리더십을 개발시켜 주셨는지 알아본다.

1) 사도들의 권위로서의 리더십
사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적 권위를 받았다.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의 사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며 그분으로부터 직분을 임명 받았다 (행 9:1-8; 고전 9:1). 그는 그의 사도직이 사람의 선택이나 승인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신적 임명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훌러의 클린턴교수는 사도의 은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사도의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가지고 새로운 사역의 조직(교회들이나 선교회들)을 만들어서 필요를 채우고, 지도자들을 개발하고 임명하는 특별한 지도적인 능력을 가리킨다.\" 이 권위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적인 권위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직업적으로 지식적으로 연약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사도로서의 권위를 가졌을 때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예루살렘 공회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다(행 23:6). 이들은 가는 곳마다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교회를 세웠으며, 성도들을 다스리고 이끄는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러므로 이들로 통하여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세계로 전파 되었다.
이처럼 선교사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신적 권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러한 부르심과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확신할 때 지도자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이원설, 문영식은 무엇이 리더십의 동기인가라는 질문에 믿음이라고 말을 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선교사로서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가운데, 리더십에 동기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자신에게 권위가 부여됨을 인정하고, 선교현장에서 잘 지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사도의 권위로서 선교사가 개발해야 할 리더십이다.

2) 성령을 통한 능력의 리더십
사도들은 오순절 성령 체험 이후 많은 능력과 지도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행한 이적과 기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이러한 이적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 졌다 (행 3:6; 행 4:7-10).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을 때에는 능력 없음으로 인해 예수로부터 꾸지람을 받기도 했지만 (막 9:19),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놀라운 능력의 사도들이 되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행 5:15)라고 하여 라는 말씀은 그 능력이 얼마만큼 대단하게 나타났는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러한 갖가지 능력은 예루살렘 교회뿐 아니라 각지에 흩어진 교회들을 지도하는데 큰 영향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도들의 리더십 향상을 위하여 각종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도록 능력을 부여해 주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능력이 사도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절대로 아니라고 하는 사실이다. 지금의 시대를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나타나는 은사이다. 특별히 선교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사도들에게 주신 능력을 그대로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3) 역할분담으로서의 리더십
사도들의 열정적인 복음전파로 초대교회는 날로 성장했다. 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데 많은 일꾼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12사도들은 교회 공동체의 원활한 역할 분담을 위해 새로운 지도자로 7명의 집사를 뽑게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민생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였다(행 6:1-10).
협력자로서 사역을 잘 감당한 사도는 사도바울이다. 사도바울의 리더십의 장점은 원만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도바울은 그 주변에 협력자들이 많았는데, 바울의 눈을 뜨게 하였던 아니니아를 비롯하여, 스데반, 바나바, 실라, 의사인 누가와 그의 훌륭한 제자인 디모데 등, 많은 인물들이 그의 사역의 동역자로서 역할을 분담하며 사역을 하였던 훌륭한 리더십의 소유자 바울이었다.
목회적 리더십으로서 역할분담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동역 자들과 역할 분담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의 힘을 필요로 하는 연합적인 사역이 되어야 한다. 이 연합된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7). 협력하여 선한 뜻을 이루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4) 순교자로서의 리더십
사도들의 순교정신은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기에 충분했다. 스데반의 순교 후 잠시 평안하던 예루살렘 교회는 다시 강한 박해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 박해로 인하여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게 된다(행 12:2).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도들이 박해로 인한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희생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아 하나님의 영광과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도자로서 사도들에게 본을 보여주셨고, 사도들 또한 희생정신으로 지도자로서의 본을 보여 줌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
선교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순교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영역을 위하여 희생적인 헌신으로 섬기는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귀한 리더십이 된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많은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에 앞장섰던 사도들의 사역은 오늘날 개인적 안일주의에 사로잡힌 선교사들에게 도전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2. 선지자의 사역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선지자들의 역할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주의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흔히 선지자를 먼 미래의 일 만을 예언하는 예언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선지자는 미래의 일을 예언도 하였지만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함으로써 당신의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우리는 선지자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위대한 리더십을 발견하게 된다. 모세와 사무엘, 느헤미야, 예레미야 등,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위대한 지도자로서 강한 리더십을 소유한자들이었다. 여기에서는 모세와 느헤미야, 그리고 이사야 중심으로 그들의 목회적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모세의 사역가운데 나타난 리더십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하여 애굽에서 40년, 광야에서 40여 년, 총 80년의 긴 세월을 통해 민족을 지도자로서 그 리더십을 개발 시키셨다. 건져내다는 의미를 가진 모세(Moses)의 이름이 뜻하듯,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는 일은 모세 개인에게는 너무도 큰 사역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오랜 기간 동안 그를 연단시키셨고 때가 이루매 그를 지도자로 삼았던 것이다. 비록 모세처럼 큰 사역은 아니라 할지라도 모든 지도자들은 그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 철저한 훈련과 교육이 먼저 요구된다.
모세의 사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는 일로 시작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은 지도자이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늘 너와 함께하리라는 비전을 받았다(출 3:12). 이어서 너희 백성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비전을 주었다(민 13:17-33).
광야의 고통스러운 환경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비전을 소유할 수 있었다. 비전을 제시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교사는 동역 자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동역 자들을 모여야 할 이유,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지, 장래에는 무슨 소망이 있는지 등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가 늘 비전과 함께 사역에 임하면 스스로 그들이 일어나 선교사를 따르게 된다. 또한 비전을 제시하되 현실성 있는 비전을 동역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
모세는 또한 인재양성에 힘을 썼다. 그는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늘 그의 주변에 두었고 (출 17:10), 이드로의 권고를 받아들여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로 인해 그의 사역은 더욱 효과적이 되었다(출 18:13-27). 리더십에 있어서 후진을 양성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소명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영역확장을 위하여 인재를 양성하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어떠한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늘 주변에 인재를 양성하는 선교사야 말로 성공을 보장받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2) 느헤미야의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
느헤미야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 라는 뜻이다. 그는 유다 지파의 하가랴의 아들이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팔레스틴 침공 당시 포로가 되어 아닥사스다 왕에게 신임을 받아 술 간원이라는 중직을 맡게 되었다(느 1:1, 11). 그러던 중 예루살렘의 비참한 형편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귀환한다. 그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신앙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인 자이다(느 2장). 그는 또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는데, 성을 건축함에 있어서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오늘날의 지도자에게 귀감이 된다(느 3장).
느헤미야의 사역을 보면 그는 기도를 통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였음을 알게 된다(느 1:4-6). 느헤미야는 늘 기도하는 자로서 세상 것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전능자이신 하나님 의지하며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 남은 유다 인들의 환난과 능욕, 그리고 예루살렘 성 파괴에 대한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수일간 금식 기도를 했다. 그의 금식과 기도는 매우 겸손하며 애절한 것이었다(느 1:4). 선교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동역 자들에게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동역 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선교사를 잘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 때문에 리더십에 있어서의 기도는 없어서는 아니 될 요소이다.
느헤미야에게는 또한 불굴의 리더십이 있었다. 느헤미야는 비 종교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하나님의 사역에 뛰어들었던 믿음의 인물이다. 그는 매우 유력한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였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 할 때는 많은 이들이 끈질기게 느헤미야의 사역을 방해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지혜롭고, 담대하게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여, 마침내 52일 만에 예루살렘 재건 공사를 마쳤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지도력, 추진력 등은 오늘의 지도자들에게도 시사 한 바가 매우 크다. 그는 영특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재건에 성공하였는데 그의 강인한 정신은 그의 사역 속에 나타났다. 어떤 면에서 느헤미야는 평신도 지도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현대 교회가 교역자 중심이 되어 가고, 동시에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신앙을 절실히 요구하는 이 시대에 귀감이 되고 있다.
느헤미야는 조직을 다스릴 줄 아는 지도자였다. 느헤미야의 사역가운데 성전재건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각 지방을 다스리는 리더들을 세워 성전의 각 부분을 나눠서 맡기므로 52일 만에 재건을 하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느 6:15). 그는 또한 성전 봉사를 외면하고 떠난 레위 인들을 돌아오게 하여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표용 성을 지닌 지도자였다(느 13:10-11).
선교사는 느헤미야처럼 조직을 잘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맡겨준 영역뿐만 아니라, 분가된 영역까지도 잘 다스릴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느헤미야는 신앙인의 좋은 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가 갖추어야 할 지도력의 표본이 된다. 평신도 지도자로서 어떻게 신앙의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일할 것인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되는 것이다.

3) 이사야의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
이사야는 성전에서 예배드리던 중에 환상을 보고 소명을 받아들였다(사 6:1-4).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웃시야 왕 시대는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군사적 전성기였다. 그러나 왕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에는 음울한 절망감이 휩쓸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가운데 하나님은 이사야를 부르시고 소명을 주셨다.
이사야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리더십의 전형이다(트리니티 말씀대전 2001:61-12).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낫낫이 지적하며 여호와께서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고 외쳤다(사 1:21-31). 그는 그 대상이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담대하게 불의한 것들을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였다.
선교사는 안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을 때 담대하게 그의 죄를 지적하였고, 이사야도 바벨론, 앗수르, 블레셋 등을 멸하시리라 한 것들을 담대하게 전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였다. 선교사는 영적 대적과 잘 싸워야 한다. 현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권세 및 부로 인해 탐욕, 억압, 종교적 형식주의 각종 부패 등의 타락, 그리고 부조리나 모순된 모습에 타협하지 않고 경고할 수 있는 진실한 믿음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는 동족에 대한 사랑이 많은 지도자였다. 그는 앗수르에 대적하려는 애굽의 음모에 히스기야가 말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3년 동아 벗은 몸과 발로 활동 했다(사 20:1-6). 또한 히스기야가 중환으로 죽게 되었을 때 눈물로 기도하면 15년간 생명이 연장될 것임을 예언하기도 하였다(사 38:5). 이사야는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면서 까지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하는 지도자였다. 선교사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혼란할 때, 경제적, 윤리적 타락이 극심한 이때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와 교역자, 그리고 성도들을 위하여 올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야 한다.
이사야는 남은 자와 메시아사상을 가진 지도자였다(사 6:13). 이는 현실의 삶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나라를 바라볼 줄 아는 선교적인 메시지였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선교사는 늘 장래의 소망을 가지고 현세의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지도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모든 동역 자들이 앞을 보라보고 자신에게 맡겨준 현실을 담대히 극복 해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야 말로 좋은 리더십을 가진 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복음 전하는 자의 사역에 나타난 리더십 개발
복음 전하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받아드리도록 기쁜 소식을 만민에게 전하는 자로서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과 함께 초기 기독교 복음 전파 사역에 큰 공헌을 남겼던 자들이다. 반면에 그들은 모두가 무명인들로서 그들의 사역은 사도들처럼 권위도 없었지만 자신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열정적으로 전하던 그러한 자이다. 빌립과 스데반, 그리고 바울의 제자였던 디모데 등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사역가운데 나타난 목회적 리더십은 어떠했는가? 이들은 전략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다. 복음전하는 자의 사역은 단순히 선포하는 사역에서 양육하는 일까지 전략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 외적으로는 전도를 통해 성도의 양적 증가를 가져올 수 있고, 내적으로는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는 것이다.
빌립은 이방인인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 하였을 때 내시가 스스로 세례 받기를 청할 때까지 양육하였다(행 8:36).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행 8:40, 21:8).
빌립은 성숙한 전도자였다. 빌립은 선택된 7명의 집사로서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서 타인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었다(행 6:3).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집사로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빌립은 교회의 요구뿐 아니라 목회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모든 봉사를 대신 담당하는 봉사하는 전도자였다. 이렇듯 복음전하는 자로서 빌립이 가지고 있던 리더십은 매사에 칭찬 받을만하게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열심을 다하는 봉사자로, 매사에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변치 않는 영적 성숙을 가진 전도자라는 것이 그에게 나타난 리더십의 본질이었다.
이러한 리더십은 스데반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평신도인 스데반도 믿음과 성령,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히 수행한 자였고 (행 6:10), 항상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였던 자였다. 그리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용서하고 믿음을 잃지 않았던 성숙한 전도자였다(행 7:59).
이들의 목회현장에서 나타난 리더십은 현 시대를 사는 선교사들에 귀감이 된다. 선교사는 현장 봉사가 요구되는 모든 일을 어느 특정한 봉사의 일에 구분되어 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원하지 않는 일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담당해야 하는 모범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빌립과 스데반처럼 세월이 흘러도 그 신앙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지속적인 영적 삶을 살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특히 선교사는 선교사로 임명 받기 전과 후의 신앙이 더 아름다워야 하고 변화되어야, 동역 자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 복음전도자들을 통하여 선교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3. 목사와 교사의 사역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목사와 교사의 영향력은 현대 교회의 성장에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한다. 선교사의 사역은 소그룹을 위한 작은 목사와 교사의 사명까지도 있다. 목사와 교사의 직분을 통해 드러난 리더십의 특징을 통해 선교사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영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목사의 직분에 나타난 리더십
목사의 직분은 교회를 친히 인도해 나가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어찌 보면 제일로 중요한 직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목사(목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치며 다스리는 영적 목자와 감독으로 묘사된다(벧전 2:25). 따라서 목사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양 무리를 잘 돌보아 온전히 구원을 얻게 하며, 그들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그들이 성장하여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님의 명령인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클린턴은 목회를 은사의 한 부분으로 정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목회의 은사는 집단의 구성원을 성숙하게 함과 잘못으로부터 보호함과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포함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을 위하여 격려하고, 관심과 돌봄을 실천하는 능력이다\" 목회자가 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로서의 소명의식이 투철 해야 하고, 성경에 제시된 목회자의 자질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 자질은 목회자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리더십이 온전히 개발될 때 주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직분을 통해 드러나며 동시에 선교사가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그리스도의 종 혹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목회자이다(고전 4:1; 빌 1:1).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로서 자신의 것을 주장하지 못하고 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참 종으로서의 자질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질이 올바로 개발이 되었을 때 성도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이 개발되는 것이다. 지도자에 있어서 종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지도자의 권위를 하락시키는 것이 되지 못한다. 진실한 종이 되면 될수록 지도자로서 그 가치는 더 올라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낮은 종이 되었다(요 13:5). 그러나 누구 하나 예수님의 권위를 무시한 제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더 높임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와그너 1995:94-95). 선교사는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역시 선교사도 주님의 종으로서 목사와 같은 종의 역할을 해야 한다. 먼저는 종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히 섬기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겠다.
둘째, 주님께서 맡겨준 양떼를 보살피는 사명이다(벧전 5:2). 목회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보살피기 위해 양의 습성을 연구하고 양들을 진단하는 의사적인 기술을 익혀야 한다. 양의 습성을 숙지한 목회자는 그 양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다스릴 수 있다. 그러므로 열심을 다하여 연구하고 열심을 다하여 뛰어야 한다. 남들보다 양에 대하여 더 연구하는 목회자가 교회를 성장 시킬 수 있다. 피터 와그너는 교회성장을 위해 목회자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러므로 남들보다 열심히 연구하는 자가 그리고 열심히 뛰는 자가 목회를 잘 할 수 있다. 선교사도 마찬 가지이다. 맡겨진 양 무리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양 무리들을 최선을 다해 살피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목회자와 선교사가 양을 돌본다는 의미에서 그 사역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도 목회자인 것이다.
셋째, 목회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이므로 전도자의 역할이 있다(마 28:19-20; 딤후 4:5). 주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셨다. 이 명령은 목회자든 성도이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역할 중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전도하는 지도자는 성장한다. 자신이 전도하지 않으면 전도하는 자의 수고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그들을 양육하는데도 게으를 수 가 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넷째, 목회자는 성도들을 교훈하고 가르치는 자이므로 교사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 (딛 1:9; 딤전 2:7). 전도되어온 교인들을 성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성경교육, 인격교육 등 그들을 가르치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영적 성장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 가족은 물론 기존신자 까지도 영적 성장을 위해 교육하는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선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양육을 위한 교육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는 교육적인 리더십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교육은 잠시 잠깐으로 끝나지 않고 어지 보면 평생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기독교 교육의 프로그램을 짜고 지속적인 교육을 시행함으로서 그들을 양육해야 한다. 이러한 양육은 동역 자들이 행하여지는 것보다 오히려 훈련된 선교사를 통하여 훨씬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목회자는 청지기(manager)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눅 12:42; 딛 1:7). 청지기는 예수께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라고 한 말씀에서처럼 주인이 소유를 맡겼다라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관리인, 대리인, 일꾼으로서의 청지기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자로서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청지기로서 언젠가 결산할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롬 14:12). 그러므로 자신의 몸, 시간, 봉사, 재물 등을 복음과 성도들을 위해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교회의 리더로서 주님이 오시는 날 책망 받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청지기 직분은 목회자에게만 준 것이 아니다. 선교사들에게도 똑같은 대리인이요, 관리인인 맡은 자로 사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능력을 소유하는데 필요한 리더십을 개발해야 한다. 청지기로서의 리더십 개발은 진실성과 신뢰성, 자율성과 능동성, 책임성과 효율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질이 목회자나 선교사에게 개발 될 때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2) 교사의 직분에 나타난 리더십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도나 선지자, 그리고 목사의 직분을 말하면서 교사의 직분도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목사의 직분이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교사의 직분도 선지자나 사도, 목사와 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엡 4:11). 에베소서 4장 12절의 말씀과 같이 이와 같은 직책들은 동일한 목적을 지닌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동일한 사명을 위한 각기 다른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교사의 직분은 사도들이 각 처소를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하여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를 세워 교회를 관리하게 했을 뿐 아니라 교사들을 세워 지속적으로 기독교 교육을 감당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거세게 도전해 오는 이단 사설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또 기독교의 진리성을 불신 세계에 변증하는 일을 감당 했다. 때로는 온갖 박해와 순교를 성도들보다 먼저 당하면서까지 교회를 온전히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자들이다.
교사의 직분이 선교사의 리더십 개발에 어떠한 영향이 미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는 가르치는 자이다(출 35:34). 예수께서는 선생이요 교사로서 제자를 가르치셨다(막 9:18). 그리고 제자들도 교회의 일원들을 가르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성경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고 말씀하셨다.
둘째, 교사는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늘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는 원칙중심의 리더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였다. \"책을 읽고, 기회 있을 때 마다 교육을 받고, 또 강의를 참석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며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배운다\" 이처럼 선교사는 배우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셋째, 교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함께 교회의 지도자이다 (고전 12:28; 엡 4:11). 교사의 직분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직분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맡은바 사명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일해야 한다.
넷째, 성도들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직분이다(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8).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딤전 5:17). 이는 교사의 직분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구절들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의 직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바로 깨닫고 열심을 다해 배우며, 가르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황의영은 리더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였다. \"리더(Leader)란 말의 두 번째 스펠링 ‘E’는 교육하는 사람(educator)의 약자이다\" (202:142).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중요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가르침에 있어서 자신이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왜 교육을 시켜야 하고, 그리고 무엇을 교육해야 하며, 누구에게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았을 때 온전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동역 자들을 가르치는 목적에 대하여 분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동기가 분명할 때 그 효과는 배가 될 수 있으며, 가르치는 리더십을 개발하는데 원동력이 될 것이다.


4. 사역자 모델에 나타난 선교사 리더십 개발
훌륭한 선교사는 만들어 진다. 그러므로 훈련을 통하여 현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선교사를 만들기 위하여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한 분야로서의 자질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1) 목자로서의 리더십
성경에는 목자라는 말이 110여 회나 나온다. 목자라는 말은 양과 소를 치는 자로서 가축 떼를 밤낮으로 지키며, 양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물과 양식을 먹이고 각종 짐승으로부터 보호하며, 길을 잃지 않게 하고 안전하게 보호하여 잘 성장하도록 하는 자이다(아가페 성경사전 1992:487-488). 이 목자는 지도자를 상징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고 말씀함으로써 목자는 그 시대의 지도자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양치는 자를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역에 비유하고 있다. 이비유가 처음 나타난 것은 창세기에서 나타난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창 49:24). 열왕기상에서는 \"저가 가로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그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왕상 22:17)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함으로써 본격적인 비유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성도들을 돌보고 사랑하시는 역할을 양과 목자를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목자의 역할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잘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러기 때문에 현 시대의 목사를 빌어 목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목자의 역할은 목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교사에게도 적용된다고 본다.
그러면 선교사의 목자의 사역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선교사는 자신의 양을 잘 인도해야 한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며\"(시 23:2)라는 다윗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은 목자가 자신이 돌보고 있는 양들을 가장 좋은 풀을 골라 먹이려고 인도하듯이 지금도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데,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교사를 통하여 당신의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선교사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였다 (마 15:24; 눅 19:10). 이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다. 보통 양을 치는 목동들은 종이었다. 그 종들이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매우 큰 타격이었다. 그러므로 양을 잃어버린 종은 밤새도록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한 예수가 잃어버린 양의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을 다시 찾고자 하는 하나님의 간절하심을 표현하는 비유라 할 수 있다. 이비유는 영혼의 귀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암시적인 표현이 된다(눅 15:1-17). 선교사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변에는 아직도 믿지 않는 불쌍한 영혼들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다가 낙심되어서 떠난 잃어버린 양들이 많다.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찾아나서는 열심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죄인 한 사람을 늘 찾고 계신다. 그리고 그를 찾았을 때 함께 기뻐하신다. 이는 목자의 마음이다.
셋째, 선교사는 자신의 양들을 잘 보호해야 한다. 목자의 사명은 자신에게 맡겨준 양들을 사나운 동물이나 도적들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이다. 또한 양들이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인도하며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삼상 30:20). 이는 각종 이단과 거짓복음들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선교사들이 가져야 할 역할을 잘 표현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는 또한 사회적인 타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빠질 확률이 매우 높은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늘 관찰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성경은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 하도다\"(벧전 4:3)라고 하였다. 이러한 각종 유혹들이 늘 주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목자가 지팡이와 돌멩이를 들고 지키듯 동역 자들을 지키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다.
넷째, 선교사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목자는 양을 무척이나 사랑해야 한다. 양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삯꾼 목자가 되어 양을 버리게 된다. 성경에서도 삯꾼 목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2). 목자가 양을 해치려는 사나운 동물들을 보고 도망간다면 이는 삯군 목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선교사가 비록 일하는 것에 대하여 삯은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열심히 양 때를 지키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여야 선한 목자라 할 수 있다. 선한 선교사는 동역 자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자이어야 한다. 동역 자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보다도 동역 자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선한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
이것이 선교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신뢰하고 따라 선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마 4:19)의 말씀처럼 목자가 양들을 향하여 말씀할 때 그들이 신뢰하고 따를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한다. 선교사는 목자가 양을 부르는 것처럼 동역 자들을 부를 때 의심하지 않고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야 말로 선교사에게 필요한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2) 종으로서의 리더십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가운데 하나는 종으로서의 역할이다. 위에서 종은 주인의 재량권에서 목숨까지도 주인의 손에 달려있다. 이러한 종의 역할을 선교사가 감당해야 한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 이니라\" (마 16:24). 주님의 부르심 앞에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의 신분의 위치가 선교사에게 주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첫째, 선교사는 자신의 의지가 없어야 한다. 종은 자신의 의지가 전혀 없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하여야 하는 자로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성경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 \"(고전 15:10)라고 하였다. 이처럼 선교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지 말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선교의 일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이 종의 신분에서 오는 선교사의 리더십이다. 예수께서도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6)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엡 6:5)라고 주신 말씀처럼 성실하게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선교사는 자신의 소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종은 자신의 의지뿐만 아니라 소유까지도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면 아무것도 만들어진 것이 없다. 그것을 믿는 자들이 나의 소유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가 잠시 관리자로서 맡겨주신 것뿐이다 (마 25:14). 그러므로 선교사는 오직 주께서 주시는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육체, 또한 정신적인 것까지 나 자신의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기에 함부로 낭비해서도 안 되며, 몸도 마음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선교사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셋째, 선교사는 자신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매우 불편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가 없는 종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 (마 20:27). 뿐만 아니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엡 6:5)라고 말씀함으로써 육체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유까지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사는 늘 곁에 계셔서 종을 인도하는 주인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써야 하며, 그 주인의 명령이라면 비록 자유 하지 못하더라도 따르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말한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 7:22). 주 안에서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삶이 참 자유를 누리는 길임을 인정할 때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선교사는 일의 성취에 대한 자신의 영광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 큰 교회로 성장하거나 어떠한 능력이 나타나면 자신이 잘하여 얻은 성과라고 자랑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일로서 종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맡은 일에 충성을 하면 된다. 일을 시키고 계획하는 것은 주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주인이 영광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다고 하였다(요 12:43). 이는 참 지도자의 참 모습이 아니다. 성경은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 지어다\"(시 29:1)라고 하였다. 또한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 지어다 여호와께 돌릴 지어다\"(시 96:7)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겸손한자의 처사이며, 참된 종의 모습이다.
선교사는 이처럼 종의 신분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주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음은 종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인식했을 때 겸손하게 맡겨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종으로서의 리더십의 한 부분이다.

3) 청지기로서의 리더십
청지기는 일반적으로 크고 부유한 집의 살림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청지기의 역할을 주인의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일과 가정의 다른 종들에 대한 관리를 하며,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 한다. 선교사는 영적, 물적, 정신적인 것까지 하나님의 일을 맡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다\"(고전 4:1)라고 하면서, 청지기로서의 하나님의 일을 맡은 관리자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또한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마 20:8)라고 하였는데, 그 삯을 나누어 주는 자가 바로 청지기이다. 이러한 청지기의 신분으로서 선교사가 가져야 할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선교사로 부르신 것은 교회의 목사가 부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다. 시편 16편에 보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라고 하였다. 구역(선교영역)이 중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교사를 세우실 때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 12:42)라고 물으신다.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동역 자들에게 필요한 영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로 부르셨다. 그러기 때문에 이 양식의 공급은 선교사에게 해당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선교사가 먼저 하나님께 바쳐지는 헌신은 사역을 위한 기본원리이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서원을 하였다 (민 6:2). 그러므로 나실 인처럼 하나님께 선교사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는 청지기가 되겠다는 서원을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도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분께 바친다는 것은 그분의 뜻에 맞추어 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셋째,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선교영역 확장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선교사를 세우신 하나님의 설계는 선교영역 확장에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선교영역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라는 것을 깨닫고 동역 자들을 양육하고 전도하는데 열심을 내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서의 사역을 감당하시면서, 복음전파에 그 초점을 두셨다. 마태복음 9장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예수께서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동역 자들과 함께 열심을 내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신 그 뜻이 속히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청지기의 사명이다.
넷째,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봉사를 하되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라헬을 얻기 위하여 삼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7년이나 더 하였다. 그러나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간의 긴 세월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창 29:30). 이는 선교사가 청지기로서 봉사함에 있어서 어떠한 자세로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라고 말하여 받은 은사대로 봉사하라고 말하고 있다. 선교사는 자신의 봉사는 물론 동역 자들의 봉사의 직분을 맡길 때 은사를 구분하여 적절하게 맡길 수 있는 안목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할 때 그 봉사는 효과를 배로 더할 수 있다. 이것이 선교사에게 있어야 할 리더십의 한 부분이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봉사자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마가복음에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함이니라\"(막 10:45)고 하였다. 이는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며 남을 섬긴다는 봉사의 극치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봉사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봉사할 때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엡 4:12). 봉사를 하되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고 성경은 말씀한다. 선교사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봉사의 모범을 보일 때, 그 선교영역이 활성화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섯째, 선교사는 청지기의 일을 하되 낙심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작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선교사가 사명이 없으면 이 또한 무거운 짐이 된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 된다. 때가 되면 기쁜 날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잘 견디어 내야 한다. 성경에서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라고 말씀한다. 소망을 가지고 잘 견뎌야 한다. 선교사가 무너지면 동역 자들도 무너지고 만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4)라고 말씀한 것처럼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좋은 날을 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교사를 세우신 것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세우신 직분 자들을 책임지시는 분도 하나님이란 사실을 기억하며 최종적인 책임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섯째,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동역 자들을 돌보다 보면 예배에 소홀한 경우가 왕왕 있다.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예배에 소홀해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게 되면 자신의 영적 상태가 퇴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교사가 예배로 통하여 영적 충만의 상태가 되어야 동역 자들도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요 4:23-24)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말로서 선교사라도 예외는 없다. 이처럼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소홀은 자신의 영적인 삶을 망칠 뿐 아니라 동역 자들의 영적인 삶도 망치게 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곱째,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재물관이 분명해야 한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함부로 낭비하거나 그대로 묻어두어서도 안 된다 (눅 16:2). 청지기는 주인이 맡겨준 재산을 관리함에 있어서 많은 이윤을 남길 때 주인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받게 된다. 청지기는 그 능력에 따라 높은 지위와 함께 책임 있는 관리자였다. 관리를 맡은 청지기는 그의 창의력을 가지고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여 부를 축척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자였다. 이러한 청지기의 사명을 볼 때,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산을 잘 관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시 24:1, 50:10-11). 그런데 이것을 망각한 인생들이 모두 자기의 것인 줄 알고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로 살아가기 때문에 처처에 전쟁과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면 평화가 있고 적은 재물에도 감사가 있고 서로 나누며 의를 행할 수 있다(잠 16:8).
그렇다면 선교사는 재산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여호와를 공경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성경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고 말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를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성경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고 하였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요일 3:17). 이는 재물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이라고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행위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행위인 것이다.
선교사는 십일조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신 14:22)라고 말씀하였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라고 하여 십일조를 드릴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반드시 십에 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선교사는 청지기로서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님 앞에서 합당한 자세로 재물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습관을 드려야 하며, 또한 하나님께 필요에 따라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재물 관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재물도 허락한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에서처럼 선교사가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어떠한 자질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러한 일을 잘 감당하려면 청지기로서 선교사는 지혜로워야 한다.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할 때 선교사의 리더십은 동역 자들을 이끌어 가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4) 중보자로서의 리더십
선교사는 중보자로서의 리더십도 가져야 한다. 중보자(Mediator)란 중간 역할을 하는 화해자, 중재자를 말한다. 인간은 죄를 통하여 하나님과 단절을 가져왔다(벌코프 1992a:477).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서 중보자가 필요한데 그분은 바로 예수이시다. 중보자로서 예수께서는 인간들을 위한 속죄 제물로, 동시에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화해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이 사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예수님의 개념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을 죄로 말미암은 이 둘 사이의 불화이다(딤전 2:5). 그리스도의 중보 개념의 기초는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중보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구약의 내용에서 발견된다. 엘리는 그의 자녀들을 훈계하면서 심각한 죄를 범한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의 가능성을 부정했다(삼상 2:25). 이와 달리 욥은 그와 하나님 사이에서 그를 대신해 그의 곤경을 말하고 그것을 해결해 줄 중보자를 필요로 함을 느낀다(욥 9:33). 그는 하나님이 그를 대변해 줄 분이시라고 결론짓는다.
선교사의 중보 사역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또 어떻게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선교사가 중보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려면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한다. 예수님은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갈기갈기 찢김을 당하셨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라고 말씀한다. 예수는 중재자로서 이 땅에서 상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예언하였고, 또한 그 예언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나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자신은 오직 주께만 있다는 결단이다. 그러므로 화를 죽여야 하고, 정욕을 죽여야 하고, 물질의 욕심을 죽여야 하는 등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철저하게 모두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는 죄인들의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몸에 피를 남기지 아니하고 다 쏟아내셨다. 이처럼 선교사는 자신의 더러운 죄악과 각종 욕심들을 다 쏟아 내어 놓아야 한다. 그러할 때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이 선교사가 가져야 할 중보자의 역할이다.
둘째, 선교사는 중보자로서 성도들 간에 화목을 도모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들을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몸을 드리셨다. 성경은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2)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가운데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다. 성경은 타락한 인간을 향하여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롬 1:29)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독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하도록 하여 서로가 화해하고 화목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희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중보자의 모습이다.
셋째, 선교사는 동역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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