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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 1 (훌러우수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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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병기 댓글 0건 조회 2,024회 작성일 11-03-31 10:44

본문


-이 논문을 무단복제나 사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서 론

1.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기독교초기로부터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교육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하여, 앞으로 기독교교육이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교육되어져야 하는지를 제언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독교교육은 퇴색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창1:1)’의 말씀처럼 성경은 장엄하고도 당연한 선언으로 시작되며, 기독교의 성경적 세계관은 이 말씀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고 본다. 이 세계관은 창조, 타락, 구속의 3원칙아래 성경적, 기독교 세계관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기독교 세계관은 물론이고, 교회의 정체성도, 교육의 정체성도 무너져서 기독교교육은 세상의 교육과 다름이 없을 정도에 이르게까지 되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는 미디어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기독교교육도 미디어화 되어가고 인간도 미디어화, 기계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인간의 주체성은 허물어 질 수밖에 없는 가운데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일반교육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일반교육을 뒤 따라왔기 때문에 기독교교육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며, 앞으로의 기독교교육을 전망해볼 때 심각하게 받아드려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그들을 가르쳐서 깨닫게 하고 그 깨달은 것을 일상생활에 실천하도록 하며, 또한 그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하여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봉사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에 있어서는 일반 다른 교육과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기독교교육은 대체로 기독교에 대한 교의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교육의 의미를 볼 때, 교육 일반의 영역에서 전제되는 인간 심성의 개발이라는 단순 당위성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 기독교 교육의 출발은 보다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 보다 구체적으로는 지상의 생애를 마감하고 가신 성자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고 이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그리스도는 명하셨으며‘성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명하셨다. 더구나 그리스도 그 자신이 삶의 과정을 통하여‘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하셨다(마28:19,20).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볼 때, 기독교 교육은, 교육으로서 신앙을 성장시키고 양육하여 나가며 이로써 이웃을 돌보는 존재로 가르쳐 나가는 것이 기독교 교육이 갖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은 이 명령에서 기초되고 방향이 설정되어 나가며 그 진행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최종적인 목표는 어디에 둘 것인가? 그것은‘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장성한 분량에 이루기까지’(엡4:13)이다. 교회를 통한 신앙교육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온전한 사람’을 이루게 하는데 있음을 성경은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무지와 태만과 또 허망한 생각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믿음의 소산을 이루게 하고 발전과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에 하나님은 부족한 인간에게 복음의 선포가 계속되게 하기 위하여 그 사명을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에서의 목회자, 교사들은 피 교육자들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까지 잘 가르칠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믿음의 거룩과 통일과 좋은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빼지 않으시고 세워 나가신다.(엡4:11~15). 결국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 그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 하겠다.
일반적인 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성장이나 사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므로 일반교육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본주의의 완전한 실현에 있으며, 이러한 실현은 동시에 사회화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교육이 기독교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처 지금의 현실로 그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육은 이러한 인간육성의 가능성과 이념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요청되는 기독교교육의 최종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교육의 위기를 깨닫고 초기기독교 시대로부터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교육의 흐름을 파악하고 앞으로 올바른 기독교교육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실행되어져야 하는가를 제언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2. 연구의 방법 및 한계

본 연구의 방법은 기독교교육에 관하여 집필한 도서와 Wilbert Shenk 교수의 강의안과 또한 본 과목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을 기반으로 할 것이며, 그리고 본인의 목회경험과 한글개혁성경을 기초로 할 것이다. 본 연구의 순서로는 서론에서 들어가는 말로서 기독교교육의 문제를 제기하고 방법 및 한계에 대하여 간략하게 서술하고, 본론으로서 제1장에서는 기독교교육의 정의와 예수의 교육목적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제2장에서는 기독교초기의 교육은 어떻게 행하여 졌는가를 신, 구약 성경을 토대로 기독교교육에 대하여 알아보고, 제3장에서는 모던 시대에 들어와서 초기 기독교교육이 점점 퇴색되어 갈 때, 종교개혁자들이 기독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 이였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종교개혁이 주는 사상적인 의미를 찾아보며, 또한 19, 20세기, 기독교교육의 주역이었던 미국의 주일학교에 대하여 간단하게 서술하고, 제4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교육에 대하여, 그리고 제5장에서는 이 시대의 기독교교육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성도들을 교육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하여 그 목표를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가서, 다시 한 번 전반적인 내용들을 정리하여 기독교교육에 대하여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본 연구를 함에 있어서 Report의 한정된 Page와 본 인의 짧은 식견으로 깊은 내용과 많은 것을 다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 연구가 부족한점이 있더라도 기독교교육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긍지를 가지고 이 연구를 하려한다.


본 론

제1장 기독교교육의 정의와 예수그리스도의 교육목적
기독교 초기의 교육으로부터 포스트모던시대의 교육에 대하여 논고하기 전에 기독교교육의 정의를 내려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기독교교육의 본질을 앎으로서 기독교교육의 흐름의 향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기독교교육의 정의

기독교교육은 예수께서 명령하신 지상 명령의 한 조목이다. 특히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가르침은 교회의 봉사, 복음의 전도, 형제의 교제 등, 행위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하심으로 기독교교육의 대상은 어느 특정인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 교육에 선행되는 일들은 \'가서\' \'세례를 주고\' 그 다음에 \'가르침\'의 단계를 언급하게 된다. 또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교회의 선교 과업으로서 여기에서 삼위일체성의 증거가 있다. 특히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중요 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교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이라는 기능은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가르침을 받고 깨달아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일반교육은 교육받는 사람이 장차 거기에 가장 헌신할 가치 있는 것을 전수해 주는 일로서 바람직한 정신상태를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실현하는 일, 또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모종의 생기 있는 지적 안목과 그가 장차 거기에 헌신할 가치 있는 것을 전수해 주는 일이라고 한다(김정환 논문, 1998).
기독교교육은 일반의 교육 내용과 차이를 갖는데 대체로 기독교에 대한 교의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교육의 영역에서 전제되는 인간 심성의 개발이라는 단순 당위성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 기독교 교육의 출발은 보다 분명히 하나님의 명령, 보다 구체적으로는 지상의 생애를 마감하고 가신 성자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고 이를 근본으로 삼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으며 성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 더구나 그리스도 그 자신이 삶의 과정을 통하여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마28:19,20).
기독교교육이 신앙을 성장시키고 양육하여 나가며 이로써 이웃을 돌보는 존재로 가르쳐 나가는 것이 기독교교육이 갖는 본질이라고 한다면, 기독교교육은 이 명령에서 기초되고 방향이 설정되어 나가며 그 진행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폴 베쓰는 기독교교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기독교교육의 기본 틀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지상 명령인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가 그것이다.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아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교육’에 대한 그리스도의 명령은‘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함’(딤후3:17)에 있다. 이러한 기독교 교육에 관한 성경의 정의를 ‘폴 베쓰\' 는 첫째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게 하여야하며,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이해시키는 것이며, 셋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을 성장시키고, 넷째는, 사회의 질서를 세우며, 다섯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관을 갖게 하고, 여섯째는, 교회와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시키며, 일곱째는, 모든 개인마다 신앙적 경험을 체득케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교리강해연구 편찬위원회, 교육편 1992:215).

위에서 살펴봄과 같이 기독교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지상명령을 기초로 하여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을 가르쳐 기독교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또한 그들이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며,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헌신 할 수 있는 자들로 만드는 것이라 정의를 내릴 수 있겠다.
부활 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세 번에 걸친 간곡한 부탁인‘내 양을 치라’의 말씀이 사랑을 기초로 한다면, 기독교교육에서의 복음과 사랑이라는 요소는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또 다른 요소를 자연 귀결시킨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이것이 곧 복음적인 활동이요 그리스도의 명하신 사랑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요소가 충분히 조화된 교육에서만이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목적

교회교육에 있어서 교사로서의 예수그리스도를 빼놓을 수가 없다. 예수께서는 사역기간동안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아니하셨다. 그는 인류의 교사로서 언제나 함축성 있고 간단한 말씀과 비유로서 자신의 가르침을 듣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그의 풍성하신 사랑을 느끼게 하셨고, 그들이 삶의 현실을 깨닫고 그 현장에서 최선의 삶을 살도록 하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가르침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예수의 교육목적은 포괄적인 사랑의 삶을 위한 교육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위한 경건 교육, 또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나의 신앙을 굳게 세우는 신학 교육, 그리고 이웃과의 참된 관계와 사명을 위한 윤리 교육, 이 세 가지 면은 예수의 교육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교육 내용이다.
김득용은 다음과 같이 예수의 교육목적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첫째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사업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케 하는 것이며, 셋째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을 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하였다(김득용 1987:316).
천정웅은 예수의 교육목적에 대하여 5가지로 구분을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간을 구원하기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의 목적처럼 영혼을 구원하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둘째는, 피 교육자들이 악습과 약함을 극복하고 강하고 완전한 자로의 성장인 전인교육에 그 목적을 두었으며, 셋째는, 피 교육자들의 일상생활에 관계된 것으로서 물질주의 보다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사는 생활지도의 목적이 있었으며, 넷째는,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위하여 치료에 목적을 두셨고, 다섯째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피 교육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가르치셨다(천정웅, 1989:32~38).
이와 같은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예수의 교육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랑의 삶\'을 누리고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예수의 교육목적은 포괄적인 사랑의 삶을 위한 교육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제2장 기독교초기 기독교교육

1. 구약적인 배경에서의 기독교교육

구약성서에서 교육에 관한 언급은 구약성서 전반을 통해 잘 나타난다(신4:5~8; 신6: 4~9; 신31:11~13; 신32:4~6; 잠3:1~3; 잠7:3; 잠22:6; 삼상1:11등).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절기와 의식 가운데 대표적인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신6:4~9).

이 구절은 히브리 교육의 핵심을 이룬다. 이 말씀은 생활을 통해서 자녀뿐만이 아니라 성도들 모두에게 전하고 가르쳐야 할 기독교교육의 근본원리이다. 또한 신명기 31장에서는 자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하여 기독교 교육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기독교교육은 어릴 때부터 하여야한다. 잠언 말씀은‘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떠나지 아니하니라(잠22:6).’고 함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실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삼상1장에서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뗀 후부터 바로 제사장을 통해 교육을 시켰다. 이러한 구약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다음 살펴볼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어떤 교육이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1. 신앙교육

히브리인들의 교육은 신명기 6:4~5의 텍스트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이신 여호와’를 강조하는 유일신적 교육이다. 이들의 신앙교육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들은 교육은 율법(토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신64~9절; 신31:11~13; 잠22:6; 삼상1:11등등). 또한 제사장들에 의한 교육이 이루어 졌는데,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과 회중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로는 율법의 해석자이자 교사인 교육적 사역이다. 이를 증명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겔44:23).

포로 이후의 회당학교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각종 제사가 중요한 교육 형태였으므로 제사장들이 영적, 도덕적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다음은 의식에 의한 교육이다. 구약에서의 교육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의식에 의한 교육의 실시이다. 모든 희생제사, 상징, 그리고 의식은 하나님을 향한 감정과 자세, 신조와 율법의 일부를 효과적으로 교육하는 수단이었다. 히브리인의 의식은 단순히 종교행위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방법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실물 교육을 하는 효과적 방법이 사용되었다.

1.2. 가정에서의 자녀교육

구약에서의 교육의 특성 중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다. 가정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신적 기구로서 최초의 사회집단이며 부모와 자녀의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종교적 매개체와 교육 기구가 된다. 히브리 가정교육은 부모를 공경하도록 가르치고 자녀 교육을 통하여 사회의 구조를 유지하는 본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루이스 쉐릴이 말한 히브리인들의 가정교육의 특성을 살펴보면 첫째는,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활동에 자녀들이 비형식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는, 자녀의 품행을 통제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하였고, 셋째는 가정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을 통하여 교육하였다(엄성목, 1998:32~35).
히브리인들의 가정교육은 하나님 중심의 교육을 하였다. 가정교육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였고 이것을 삶의 현장에 구현시키려고 하였다. 이들은 가정을 단순한 사회적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입장에서 보았다. 하나님과의 언약 적 관계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 개인과의 언약인 동시에 히브리 민족 전체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히브리 교육은 민족적이면서도 개인적이었고 그 전통 속에서 가정의 귀중성이 강조되었다(Ibid, 35~36).
구약성서에서의 교육은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부모에게는 가르칠 책임이 주어졌다(출12:26~27; 신4:9~10; 6:6~7; 11:19). 부모들은 자녀들을 가르쳐야하는 일차적 교사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기까지는 현대적 의미의 학교란 존재하지 않았고 가정이 비형식 학교로서 가르침의 장소였다. 그러므로 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었다.(잠1:8~9). 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르쳤고 특히 아침과 저녁은 물론 식사 전후의 기도생활과 안식일을 지키는 법, 절기 등세 대한 교육을 하였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며 그 말씀을 자기 자녀들의 마음에 새기도록 교육하였다(신6:6~9). 이러한 교육은 대를 이어 전승되었고(시78:5~8), 삶의 현장에서 구체화 되게 하였다.

1.3. 회당교육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해방이 된 후에 기독교교육은 회당교육을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회당이란 예배의 장소이지만 오늘날의 예배당과 같은 장소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참 예배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공동체였다. 회당에서는 기도, 성경낭독, 성경해석 등을 하였는데 이러한 교육은 오늘날 기독교 교육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도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마9:35; 마13:54; 막1:23등등).
2. 신약적인 배경에서의 기독교교육

신약성서에서 기독교교육의 근거를 여러 곳에서 증거하고(마11:1; 막4:1; 요7:14; 행15:35; 롬12:17; 골3:16; 등등) 있으나 그 대표적인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4:13).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성서에서는 가르침과 교훈한다는 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영] Teaching [히] hd:/T(torah) [그] didaskaliva(didaskalia), didachv(didache)이다. 이 말은 가르치고 타이르며 이끌어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체의 지혜의 본원(本源)은 하나님 그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을 받고, 이것을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가르침], 또는 [교훈](teaching)으로 역되어 있는 히브리어 [토-라-]는 후에는 [율법](law)의 의미로 씌어지고, 그로부터 모세의 글(5경)에 포함된 하나님의 율법 전 결집(全結集)을 가리켜 부르는 명칭으로 되었는데, 그것 이전에는, 이 역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이 [교훈]을 의미했다. 이것은 특히 지혜 있는 자의 교훈(잠 13:14)의 형태를 취했다(미션바이블 성경사전).

2.1. 교육의 원리

신약의 기독교교육은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 사도들의 설교와 서신들, 초기 교회의 예배와 교제 등을 통하여 실시되고 또 전승된다. 그 중에서도 예수의 기독교교육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데 그 이유로 예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생생하게 구체화된 존재이며(요14:6), 그가 가르치는 내용 바로 그 자체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권위를 가지고 계셨으며, 가르치는 교수법도 탁월한 최고의 교사이셨다. 또한 성경을 교육의 기초 자료로 삼는다. 성경이 교육 논문은 아니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로서 교육의 지침서이다. 이러한 원리 속에서 기독교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정립되는데, 이 모든 것의 바탕은 성경이다.

2.2. 신약의 교육목적과 내용

복음서에 나타난 교육의 목적은 예수처럼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의 성품을 닮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같은 삶을 살도록 성장하는 것이다. 예수가 교육의 목표와 삶의 방향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배움으로 그를 닮아 가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는 유대인의 회당이라는 전통적 교육 처소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였고, 또 삶의 현장 전체를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예수는 전통적 방법도 사용하시고 파격적인 방법과 장소를 활용하셔서 교육하셨다. 예수가 거하신 모든 곳이 교육의 장이었고, 모든 대상들에게 교육하셨다.
신약의 기독교교육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2.2.1.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

예수의 교육 내용은 매우 다양하였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부터 이 땅에서의 구체적인 삶까지 폭넓은 영역을 다루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삶의 현장에서 참다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 영역에서 접근하였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전승되어 제자들을 전도자와 교사로 변화시켰고, 이러한 가르침은 제자들의 생활 속에서 구체화되었고(행2:42), 제자들은 날마다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쉬지 않았다(행5:42).
또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제자와 장년뿐만이 아니라 어린이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함으로써 어린이에 대한 신학적인 가르침을 강조하고 이에 따른 기독교 유아교육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예수께서 자신에게 오는 어린아이를 꾸짖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마19:13; 막10:13; 눅18:15)고 가르치셨으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영접하는 것(막9:36; 눅9:48)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어린이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까지도 시사함으로서 교육은 누구를 불문하고 계속되어져야 하며 기독교의 중요한 한 부분임을 알게 하였다.
이와 같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교육목적을 이훈구는 그의 책에서 Lewis J. Sherrill의 책을 인용하여 이렇게 정리하였다.

① 하나님을 아는 자의 의식과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자 자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고, ②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이해시키는 것이고, ③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것이고, ④ 사회의 질서를 수립시키는 것이고, ⑤ 크리스천이 의미하고 있는 인생철학을 의미하는 것이고, ⑥ 교회와의 정상적인 관련을 맺는 것이고, ⑦ 개별지도를 위해 깊은 신앙적 경험을 체득케 함에 있다(이훈구, 2000:40~41).

2.2.2. 사도들의 교육

사도들은 설교와 전도를 통하여 그들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사도들의 설교 내용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예수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서 파생된 크리스천의 구체적인 삶까지 교육하였다. 사도들은 구약성경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가르쳤는데, 히브리인들에 대해서는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경을 정확하게 풀어 해석하는 하는 일이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통해 교육을 실시하였다. 모임을 통해 예배, 성경공부, 친교의 요소를 포함하여 기도, 찬양, 성경낭독, 교육 등이 행하여졌다. 또 성만찬 뒤에 이어지는 애찬식을 통한 성도의 교제로 자연스러운 교육이 이루어 졌다.
이때에는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은 히브리인들의 전통이었다. 가정은 어린이 교육을 포함한 가정 공동체의 교육의 근거였다. 성경이 유일한 교본이었고 그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구체화 시켰다.

제3장 모던시대의 기독교교육

1. 종교개혁과 기독교교육

종교개혁 초기의 기독교교육은 그전 시기의 교육형태 즉 가정에서의 종교교육, 예배와 교구중심의 교육, 목회적인 돌봄을 통한 교육 등이 그대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무르익어 가면서 개혁에 대한 보다 고차원적인 이론 정립과 보급이 요청되었는데 마틴 루터와 존 캘빈의 기독교교육관에 대하여 살펴본다.

1.1.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과 기독교교육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기독교교육에 있어서도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동안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형식주의와 상징주의 교육의 맹종적인 교육형태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대한기독교협회 편집 1992:134). 루터는‘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씀이 만인 제사 론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신학적 기반에서 볼 때, 일반신도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데서 교육적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다. 당시의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사제를 통해서만 성서를 듣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개별적으로 성서를 스스로 읽어야 한다고 믿음에 따라 성서를 자기나라 말로 번역하는 사업을 벌였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번역이 그 효시였다. 성서를 만민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욕구에 불탄 루터는 종래의 라틴어 성서에 대치되는 독일어성서 반포에 진력함으로써 민중을 상징으로 가르치는 대신 말씀으로 그들을 재창조, 재형성하려고 했던 것이다(정웅섭, 2000:43~44). 또한 루터는 커리큘럼의 성서 중심주의를 자각하고서 각급 학교 커리큘럼에 연결시켰다. 그는 우선 이 일을 대학의 학과개혁의 문제로서 자각했다. 그 후 초등교육의 커리큘럼 개혁에 있어서도 성서중심적인 방향을 채택했다. 루터는 처음에는 학과 커리큘럼이 지니고 있는 이교적인 성격에 대한 항거로서 이를 시작했지만, 후에는 각급학교의 커리큘럼 속에 성서적인 핵심을 불어 넣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라야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울 수 있다는 그의 확신에 비롯된 것이다(Ibid, 44).
성서교육과 관련하여 아무리 성서가 일상용어로 번역됐다고 하더라도 어린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자들에게 성서는 여전히 어려운 책이었다. 따라서 성서를 바르게 가르치려면 성서가 성서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기 위한 지침서 같은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지침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요리문답서이다. 루터는 요리문답서를 성서와 대립한 혹은 성서와 병립해 있는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성서의 요약 또는 작은 성서라고 불릴 만큼 가치가 있어서 제네바교회를 중심으로 한 캘빈의 교육에서도 이 요리문답서가 널리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Ibid, 44~45).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의 인간형성은 단순히 교회내의 교육에 머물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책임 있는 주체 자가 된 사람은 동시에 공동체와 관련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루터에게 있어서 이 공동체는 교회가 되는 동시에 국민공동체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독일의 이른바 공교육이 시작되었다. 특히 루터에게 있어서 모든 교육은 국민을 위한 것이기에 교회의 교육도 필연적으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교육이었다. 그런데 이 국민교육은 종교교육과 깊이 연결된다. 회중이 성서적으로 사고하고 교회에서 예배와 삶 속에 정서 깊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혁자들은 대중에게 글을 깨우쳐 주는 학교를 세웠다. 강한 종교적인 정열이 백성들을 읽기와 쓰기를 배우도록 만들었고, 인문교육에 대한 흥미를 강조하였다. 이렇게 해서 강력한 국민 의무교육이 실시되었다. 새 학교들이 교회와 정부의 공동적 노력으로 여기저기 세워졌다(Ibid 46,47).
루터는 중세적 이원론을 탈피하여 교회와 세상, 신앙과 삶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그의 교육사상에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교회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서만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평화, 정의를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했다. 루터에게서 비로소 세상의 영역, 삶의 영역도 교회만큼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며, 이를 위해 그가 학교의 주체를 기존의 교회에서 국가로 옮긴 것은 근대적인 공교육의 효시가 된 것이다(양금희, 1999:83).
결국 루터는 당시 외면되었던 대중의 교육기회 균등화 작업, 공교육의 실시에 대한 획기적인 기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성서를 교회의 독점에서 학교와 대중의 성서로 바꾸어 놓은 일, 의무교육을 위한 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한 일 등은 현대 교육에 미친 큰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1.2. 존 캘빈(John Calvin)의 종교개혁과 기독교교육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캘빈의 교회교육 이론은 우리에게 그가 교육을 교회 안의 어느 한 영역, 즉 교회학교나 견신례교육과 같은 좁은 영역으로 제한하여 생각하지 않고,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교회교육의 대상을 어린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의 모든 구성원들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증명해 준다(Ibid 154).
캘빈은 신도 개개인이 철저한 자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책임 있는 주체 자를 교육하는데 그의 교육적 역점을 두었다. 그것은 교회규칙과 법규를 지키는 생활이라는 형태로 규정되어 있었다(대한기독교교육 협회 편집, 1992:134). 실제로 캘빈은 교회의 교육이 갖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신자가 되기 위한 처음의 기초를 놓는 것과, 그들의 신앙이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였다(Ibid, 155).
캘빈에게 있어서 이 같은 규율 있는 훈련을 받는 일은 중세기 수도원에서 강조된 <침묵의 복종>과는 달랐다. 복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책임 있는 주체자의 형성을 위해서 규율이 극도로 중요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캘빈은 희랍과 로마의 고전적인 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이것을 각급 학교교육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대한기독교 교육협회 편집, 1992:134). 이와 관련하여 당시 이러한 학교교육이 가능하게 된 배경으로는 인쇄술의 발명으로 출판물을 책으로 널리 반포하는 방법이 가능했던 것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계기로 해서 고전이 재발견되고 그것이 따라서 고전연구와 고전문헌학(Philology)이 발흥한 것이다(정웅섭, 2000:41).
캘빈은 이 고전적인 교양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훨씬 적극적이었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적인 지식을 높이 평가하고 이것을 각급 학교교육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Ibid:48). 이 고전문헌학과 고전학에 대한 흥미는 중세와 근세의 중간기에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지닌 막강한 힘을 자각케 하였다고 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당시 대학교육의 교과과정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이른바 언어주의 교육이 교육의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게 했던 것이다(Ibid:41).
캘빈은 특히 제네바를 중심으로 하여 신정정치를 실시했는데, 교회의 구조 자체를 교육과 봉사의 기능으로 구분하여 교육행위를 교회라는 터전 위에 확립하였다. 그리고 제네바 아카데미를 만들어 거기에 초급반과 고급반을 두어 공교육 제도를 실시하기도 했다. 중세기의 기독교교육의 특성이 교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종교개혁기의 교육은 신앙과 문화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기의 교육의 특성을 정리할 수 있다(대한기독교 교육협회 편집, 1992:134,135).

1.3. 종교개혁의 교육 사상사적 의미

교육 사상사적인 면에서 근대적 교육학과 관련하여 종교개혁이 갖는 공통점과 상이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중세적인 비교육적 풍토에 교육의 중요성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부각되었고, 교육의 대상이 소수의 성직자에서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에서는 중세적인 교육이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인에 대한 발견이 두드러진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을 신분이나 집단의 일원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독자적이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이끄는 교육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교육의 장이 교회에서 가정과 학교와 교회로 확대되었으며, 학교가 교회에서 국가로 소속되게 함으로써 학교교육의 대상영역을 넓혔다. 또한 교육의 내용과 방법까지도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종교개혁은 교육의 일부분에서만 변화를 초래한 것이 아니고, 교육 전반에 걸친 변화와 갱신을 가져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종교개혁은 곧 교육의 개혁이며, 종교개혁적인 교육개념은 중세적인 교육적 구조를 개혁하고,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근대적인 교육개념의 효시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근대적 교육학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육을 중시하였지만 이것이 인간을 향한 믿음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서 있는 존재이며 스스로 내적인 완성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포기하고 부정할 때 비로소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에게서 교육의 필요성은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교육이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앞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나가기 위하여서 필요한 것이지, 인간을 완전에 이르도록 개발하기 위한 인간 능력개발의 통로는 아닌 것이다(양금희, 1999:355~358). 그러므로 종교개혁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교육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이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자들의 교육개념과 근대적인 교육학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의 교육이념 안에는 근대교육과 공통으로 하는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맥락을 달리하는 상이점도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교육개념 속에 중세성과 근대성, 더 나아가 근대 이후 적 특징까지도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을 볼 때 종교개혁을 중세, 근대, 근대이후 중 어느 한 시기에 국한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마틴 루터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일대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2. 근대의 기독교교육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치는 시기는 새로운 사회구조의 변화를 겪는 시기였다. 종래의 지주와 소작, 귀족과 평민관계의 이원적 사회구조를 이룬 것에 반해 근세기 에는 제 3의 계급구조가 새롭게 형성되는 시기였다. 제3의 계급이란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계급이다. 지금까지의 정적 사회는 출신성분과 이미 형성된 계급의 유지를 위해서 제도적 장치 내지는 교육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이와 같은 정적인 사회구조를 뒤흔들어 놓았다. 출신성분과 계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대우받게 된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과거 1,000여 년 동안 기독교적 교권의 지배아래 있던 사회제도와 교육 환경도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산산이 무너져 버리고 개인의 능력 내지는 논리적이고, 이성에 부합한 것만이 그 사회와 제도를 지배하는 새로운 실력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부류가 이른바 제3의 계급(중산층)이며, 중세기적인 신비주의에 항거하는 합리주의 혹은 계몽주의 사상이 이 시대를 휩쓸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 그동안 교권의 지배아래 있던 모든 주도권이 이제는 세속적인 세력이 주도권을 인수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교육의 주도권도 이제는 교회의 간섭을 거부하게 되었고, 제도적으로도 정교분리 원칙에서 교회의 설 자리가 과거보다 위축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중세사회가 의지해 왔던 교회 주관의 학교교육에 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학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3가지 형태로 그 모습이 정비하게 되었다. 첫째는, 사립학교(재정적으로 부유층을 위한 학교) 둘째는, 교회와 연결된 학교(아직도 과거에 관련된 교회의 주도 아래 운영되었던 학교) 셋째는, 자선학교(중세기 공립학교로 남아 있던 학교).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와 더불어 옛날부터 있었던 고전학교들도 병행해서 유지되고 있었다(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92:135,136).
여기서 근세기의 중요한 사상적 흐름을 간과할 수 없다. 1,000여 년 동안의 교회 주도적인 사회 층이 갑작스런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을 맞아 풍전등화처럼 멸절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세속세계의 도전에 대하여 기독교를 수호하려는 다음의 3가지 반응이 교회 안에서 일고 있었다.

2.1. 정통주의의 교회교육

이것은 세속의 저항에 적극적으로 항거하거나 혹은 이를 받아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여기서 피해서 자기를 폐쇄하는 입장이다. 유럽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 미국에서는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이 입장은 자체 속에 완고한 폐쇄성을 지니며, 논리적으로 완결함을 내세우면서 다른 입장을 일체 허용치 않는다. 이들의 교육은 개혁자들의 교회교육 방법을 그대로 이어 받은데 지나지 않았다.
우선 성서교육은 성서의 본질적인 권위보다는 절대무오 등 고정된 권위를 존중했다. 카테키즘 교육과 견신례 교육이 교회교육의 중심을 이루었는데, 카테키즘 교육은 극도로 형식화되고 율법 화 되었다. 주로 카테키즘의 암기와 암송이 강요되었고, 심할 경우 스웨덴 교회에서는 루터의 소 교리 문답서를 암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결혼의 허락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이 정통주의 교회교육은 카테키즘 교육의 형식화와 율법 화를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정통주의 입장의 교회교육은 형식상으로는 옳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내용상으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지니고 있던 역동적이고 생동적인 성격을 이미 상실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2.2. 경건주의의 교회교육

이 입장의 기독교는 세속의 도전 앞에 적극적으로 항거하는 자세를 취한다. 주로 중세기 신비주의와 특히 독일 신비주의 흐름에 그 전통을 두어 17~18세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교회의 내면적인 개혁운동을 경건주의라고 부른다. 이 입장은 좁게는 독일 경건 파, 넓게는 경건주의의 직접 간접적인 영향아래 구미 각지에서 일어난 신앙부흥운동을 총칭하는 것으로 기독교의 한 강력한 저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 흐름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공식적,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에 선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평신도 운동의 형태를 취하면서 기독교로부터 이탈하지는 않고 교회 안의 교회라는 형태를 취했다. 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생활양식은 대체로 극히 실천적이고 행동적인 것이었다(정웅섭, 2000:51~53).
이 운동의 창시자는 스패너(P.J. Spener)이며, 그의 제자인 프랑케(A.H. Franke)가 프랑케학원을 세워 경건 주의적 종교교육을 실시했다. 경건주의를 말할 때 종교교육의 최초의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코메니우스(J.A. Commenius)를 빼어 놓을 수 없다. 그는 모라비아 교도로서 가톨릭과 개신교로부터 동시에 버림을 받고 방랑길에 나선 모라비아 교도들과 유랑생활을 하면서 대교수학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이 교도들의 교육의 핵심은 교육에 대한 책임과 신앙적인 회심이었으며, 이 회개는 개신교의 교육에 새로운 입장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대한기독교교육 협회 편집, 1992:136).

2.3. 합리주의의 교회교육

이 입장은 세속세력에 폐쇄적인 입장도 아니요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입장도 아니라 그 세력을 받아들이고 순응해 나가는 자리에 섰다. 즉 근세기에 몰고 온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 그리고 진화론적 사고 등을 모두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소화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서 신앙과 기독교교리를 재정비 및 재해석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이 경우 성서의 외형적인 권위가 이미 기준이 될 수 없고, 철저하게 이성과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 아래서 재평가되고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후에 호레이스 부쉬넬(H. Bushnell)이 이끄는 종교교육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Ibid, 136~137).
3. 주일학교 운동과 기독교교육

주일학교의 역사를 빼놓고는 기독교교육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주일학교(Sunday School)는 오늘도 여전히 중요한 기독교교육의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인데 이것이 처음으로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매우 분명하고 특정한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Ibid, 59).
근대사회는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그들의 생활구조가 달라지고 조건을 바꿔 놓았고 기계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숙련공이 물러나고 단순한 기계조작만 할 수 있는 저임금자들이 대거 취업하게 되었다. 따라서 가장은 집에서 집안 살림을 해야 하고 부녀자들이 가정을 떠나 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회구조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니 가장들은 날마다 할 일감이 없어 방탕생활을 하게 되고 아이들은 방치된 상태가 되니 그 사회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라는 한 평신도가 거리에서 웅성대는 어린이를 모아 놓고 그들을 선도하기 위해 1780년 글로우체스터의 세인트 카사린즈 거리에 주일학교를 세웠다. 이 처음의 주일학교는 모두 남자어린이들을 위한 학교였으며, 그로부터 1~2년 후에 비로소 여자 어린이들도 받아들이는 학교가 개설되었다. 초기의 주일학교에서는 6세부터 12세 혹은 14세까지 어린이들이 모여졌으며 교육과정은 글 읽기, 철자법, 예배, 성서연구, 문답식 공부 등이었다. 아침에는 10시부터 12시까지, 오후에는 1시에서 5시 30분까지 공부는 계속되었다(대한기독교교육 협회 편집, 1992:59).
창시자인 레이크스는 첫째로, 당시에 팽배했던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효한 수단을, 그것도 교육이라는 수단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앙과 정열과 용기와 인내로서 이것을 추진해 나갔다는 것이다. 둘째로, 문제사적으로 초기 주일학교를 볼 때, 또한 실제상의 계보로 볼 때, 당시의 주일학교 운동은 후랑케의 빈민교육 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겠다. 당시의 주일학교 운동은 세속화환 세계에 대한 교회의 교육적인 관여에 대해서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당시 레이크스와 그의 협조자들은 주일학교 교육을 전국적으로 운동화 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운동이 당시의 평신도 중심의 신앙부흥이나 계몽운동과 연결되어 영국국민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과 구체적인 생활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정웅섭, 2000:65).
이렇게 초기 영국 타입의 주일학교는 후에 국가들의 의무교육제도가 확립되어 국가가 일반교육을 학교에서 하게 되자 1880년에 들어서면서 성격이 변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일학교는 단지 교회교육의 한 기관으로 머물 수밖에 없게 되고, 미국으로 건너간 주일학교 운동은 다시 특이한 발전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Ibid, 66).

3.1. 19세기 미국 주일학교 운동

주일학교 운동이 미국으로 번져가게 되자 새로운 양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물론 그 초기에는 영국의 형태를 그대로 본받아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교회학교로 시작되었다. 대개 6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들을 모아 문맹교육과 교리문답을 교육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그 성격상 일반교육적인 색깔이 매우 짙었으며, 주로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 그리고 어느 정도의 종교훈련을 실시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초기 주일학교 교육이 미국 공립학교교육의 선구자적인 자리에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던 것이 1776년 미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1789년에 헌법을 제정하여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시하게 되니까, 일반학교 교육으로부터 종교교육을 분리시켜 버리고 주간 5일간 교육하는 일반학교 교육이 정부 주도로 설립되었다. 따라서 주일학교는 주일 하루만을 이용하여 종교교육을 시켜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여기에서 주일학교 교육의 방향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즉 주일 하루 교육으로 일반학교 교육을 압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1815년경부터 미국 주일학교는 내적 경건의 획득이라는 점을 앞세운 체험중심의 교육방향으로 기수를 잡게 되었다. 이것이 신앙부흥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동부에서 서부로 개척의 붐을 타고 일어났을 뿐 아니라 전 세계 무대로 번졌다. 미국 초기의 주일학교 운동은 주로 평신도 지도자들에 의해 유지되었다는데 특징과 의미가 있었고, 영국의 그것과는 달라서 처음부터 교회적인 배경이 뚜렷했다.
미국의 주일학교는 다음과 같이 3개의 주일학교로 구분을 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개 교회 주일학교(The local church school)로서 개 교회가 그 멤버를 육성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서, 도시 농촌을 불문하고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생겨났다. 둘째는, 도시 전도학교(The city mission school) 교회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대한 학교로서 그 인접한 지역의 빈곤한 가정이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이다. 주로 자본주의의 발전과 막대한 이민들의 입국에 따라 생겨난 탈락 가정의 어린이들에 대한 기독교적인 배려로서 일어난 것이다. 셋째는, 개척지 주일학교(The pioneer Sunday school)로서 미국동부지역 개척사업이 끝나면서 서부개척이 시작되었는데, 점차 확대되는 서부 변경지대로 주일학교가 진출했던 것이다(Ibid, 85~88).
이렇게 미국의 초기 주일학교들은 미국 서부로 진출, 서부를 기독교 화함으로써 세계를 기독교화 하자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주로 죄, 용서, 회개, 구원만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는, 철저한 개인 구원 위주의 신앙만을 가르치는 교육을 했는데 여기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2. 20세기의 미국 주일학교 운동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교회에는 재래의 주일학교 교육에 첨가하여 다른 형태의 교육이 폭 넓게 촉진되었다. 주일학교의 발전기와 거의 동시대에 처음에는 YMCA와 기독청년면려회의 청년운동과 후에는 각 교파의 청년운동들이 발전되었다. 하기와 동기휴가 기간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수양회와 캠프 활동이 개발 되었다. 또한 교육 내용면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계단공과 커리큘럼들(부별공과, 종합 계단공과 등) 이 주일학교 교육에 대해서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에 와서 재래적 교회교육의 조직에 변화가 왔다. 이른바 다원화 사회가 형성되면서 보다 광범하고 과격한 상대적인 동질문화를 형성했고 이것이 공립학교의 존재를 통해서 용이하게 이른바 통상적인 기독교를 촉진시켰다.
교회들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그 이상 더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교육 전략을 명령할 수 없게 되었음을 스스로 감지하면서 당혹스러워하고 깊은 우려마저 느끼게 되었다. 교회가 주일마다 행하던 임시학교 형태의 교육적 노력에 대해서도 심각한 제한성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고 대중교육적인 공립학교 제도가 발전하면서 종교교육의 제한된 노력마저도 점차 감소되어 갔다. 또한 고등교육 기관이 교회 밖에서 급속히 발전되면서 이것이 교회계통이나 사립계통의 대학들보다 월등히 앞서서 나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20세기의 기독교교육의 역사라고 할 때 중요한 점은 그 이전까지는 철학, 신학, 이론부재의 학문이전 시기였던 것이 비로소 학문성을 띄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부슈넬(H. Bushnell)의「기독교양육」이 효시가 되어 조지 코우(George A. Coe)로부터 본격적인 학문적 건설이 시작되어온 20세기의 기독교교육은 1960년대 중반까지 활발히 학문적인 발전을 계속해 왔다. 여기서 기독교교육의 학문성 내지 이론정립이라는 것은 교육의 주체와 내용을 결정하는 신학과의 관련성을 형성하는 작업이다. 20세기의 기독교교육은 그 시대의 신학과 대화하면서 교육의 이론을 세워 온 셈이다(Ibid, 84-89).

4. 모더니즘 기독교 교육의 특징 요약

지금까지 모더니즘시대의 기독교 교육을 살펴보았다. 이성의 시대로 대변할 수 있는 모더니즘 시대의 기독교 교육은 다음의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회심과 양육의 이원론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교육은 회심의 교육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부쉬넬 이후의 종교교육학파의 등장은 기독교교육을 양육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러한 회심과 양육의 이원론은 모더니즘 시대에서는 결국 극복되지 못하였고,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였다.
둘째는, 모더니즘 시대의 기독교 교육은 일반 교육적 패러다임을 쫓아‘학교 교육식 교육’이 이루어져왔다. 학교 교육식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분류되며, 지식의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고, 지식 축적으로 인한 교육으로 교육에서 인격과 지식은 분리되고 말았다. 또한 학교 교육식 교육은 교육 목표에 따라 진행되므로 타일러식 목표 설정 이론에 맞추어 교과 학습이 진행되므로 합리적 일수는 있지만, 개체성을 강조한 모더니즘적 한계를 지니게 되었다.
셋째는, 모더니즘은 객관적 앎을 강조하는 인식론에 영향으로 성경 공부식 교육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성경의 지식을 많이 담아두는 것이 교육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각종 성경이해와 암송, 쓰기, 등의 교육이 교회현장에서 이루어져 왔다.
넷째는, 거대 담론을 중요시하는 영향으로 기독교 교육은 인간의 죄, 구원, 교회, 하나님에 대한 교리적 이해가 모두 객관화되고,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는 대상화 작업이 일어나게 되었다. 세례문답에서 정답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교육에서도 나의 이야기는 거대담론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모더니즘적인 한계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만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을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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