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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의 여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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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61회 작성일 13-05-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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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의 여정 (2)







시내산을 내려와 잠도 제대로 못잔 생태에서
8시간의 버스여정은 매우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어지는 호텔세미나 실에서 예배를 마치고 곤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또 하루의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오늘의 여정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여정이었다
. 여정의 첫 시작은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하여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나라를 완전히 빼앗겨 2천여 년 동안 나라를 잃고 방랑자 생활의 시작이 되었던 맛사다 요새이다.




맛사다의 요새는 헤롯왕의 휴양지로 기원전
30년에 지어졌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백성 967명이 그곳으로 피신하였고 로마군의 포위로 3년 동안 전쟁을 치른 요새였다. 그러나 더는 버틸 수 없어 960명이 자살을 하였고 7명만 후대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물두멍 속에 숨었다가 살아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쿰란공동체 유적지에 들렸다
. 그곳은 구약성경인 사해사본이 1947년 어느 베두인 목동에 의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더하여 그곳에서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경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사해사본 대부분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쓰였고 글 쓰는 방에서 발견된 두개의 잉크병과 석고 세면기 등을 통해 그곳이 성경들을 필사하는 장소였음을 알게 했다.




쿰란공동체는 철저한 금욕주의에 의한 생활을 하였으며 재산에 있어 공동 소유제를 유지하는 등 공동에 의한 생활을 거룩한 삶으로 여겼다
. 쿰란 공동체는 기원전 2세기 중반부터 기원후 1세기경까지 로마에 의해서 파괴될 때까지 존재했다.




다음의 답사 지는 사해바다였다
. 사해바다는 해수면보다 400미터나 낮은 곳이다. 이곳은 요단강에서 흐르는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여 주변의 더운 사막의 기후로 물을 건조시키므로 짠물로 변한다. 최근에는 해수면이 1년 평균 80씩 낮아져서 지형이 변하고 있다. 이곳은 염도가 매우 높아 사람이 가라앉지 않는다. 사람이 누워 있으면 둥둥 떠다닌다. 이곳은 죽음의 바다로 불렸다. 그러나 이곳은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생명의 바다로 변하였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품질이 좋은 각종 화장품, 관절에 사용되는 재료, 치약 등등 많은 생산품들이 쏟아 나와 황금의 바다로 불려진다. 사해바다에서 머드팩을 하고 수영을 즐기고 요단강의 예수님 세례 터로 갔다.




이 세례 터는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을 사이로 두고 있었다
. 그곳 요르단 지역에서 찬양을 부르고 있던 아프리카 흑인 목사와 성도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함께 찬양하였다. 그들은 영어로 우리는 한국어로 강을 사이에 두고 소리 높여 찬양을 부를 때 매우 감동적이었다. 찬양으로 처음 본 사람과 하나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주안에서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나님께 감사했다.




남은 하루의 여정은 여리고 성읍과 그리고 삭개오가 돌 감람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났던 곳과 예수께서
40일 금식기간동안 시험을 받았던 시험산을 답사하고 그 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여 하루의 여정을 마쳤다.




숨 가쁜 하루의 여정을 마쳤다
. 피곤한 몸이었지만 가슴 벅찬 하루였다. 그리고 내일 예루살렘에서의 답사가 기대가 되는 밤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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