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top-06-230118.jpg

에세이

생명을 살리는 교회, 행복나눔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홈 | 담임목사님 | 에세이

진정한 평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56회 작성일 11-03-11 19:01

본문



?

세상은 평화를 원한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간에 피차 평화를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평화의 방법은 각기 다르다. 그 중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이 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 쟁취하는 방법이다. 전쟁을 통하여 그 나라를 빼앗아 평화가 있도록 한다는 구실 좋은 평화이다. 이는 나의 평안을 해치고 상대방을 죽이고 항복시킴으로써 얻어내는 이 방법은 너무도 허무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타협이다. 싸움보다는 서로 타협함으로써 평화를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타협이 얼마나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인지 현대 외교에서 흔히 문제점을 볼 수 있다. 국익이 없다면 타협은 불가능하다. 불 가은한 방법을 위하여 많은 수고들을 한다.


또 하나는 망각이다. 서로 잊고 사는 것이 평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제일로 타당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서로 관심밖에 일로 망각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망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안을 해소시켜 주거나 평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이리안자야 족에 전도한 단 리처드슨 선교사의 이야기는 유명한 선교실화이다. 그 때는 아직 자야 섬에 식인종이 있을 때였다. 그들은 부족 간의 싸움이 심하였다. 이들은 서로 싸우다가 만일 화해를 청할 때는 자기 마을의 갓난아기 하나를 적군에게 제물로 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아기를 “평화의 아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리처드슨 선교사가 이 섬에 도착한지 2년째 되던 해 다시 부족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 부부가 아기를 안고 언덕에 나타났다. 대치하고 있던 그들은 놀란 눈으로 이 선교사 부부를 지켜보았다. 선교사 부부는 갓 난 자신들의 아기를 “평화의 아기”로 내놓았던 것이다. 이 관경을 본 쌍방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공격의 외침이 아니라 평화의 도래를 가리키는 기쁨의 함성이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기독교를 거부하고 있던 이리안자야 족속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유명한 이야기이다.


진정한 평화는 희생에 있다. 전쟁도 아니다. 그렇다고 타협도 아니다. 또한 망각도 아니다. 진정한 평화는 희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주님은 이 땅에 참 평화를 위하여 오셨다. 그리고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아낌없이 희생하셔서 참 평화를 만들어 내셨다. 주님의 평화는 전쟁도 아니고 타협도 아니고 망각도 아닌 희생이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평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진정한 평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아낌없는 희생이 뒤 따라야한다.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위로하며,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타인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 그러할 때 참 평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기억하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nce 2011. Copyright @ 행복나눔교회. All rights reserved.